CRISPR 스크린으로 인간 신경발달 질환 유전자 규명
뇌의 겉질 회로 형성에는 뇌의 아래쪽에서 위쪽으로 이동하는 신경세포들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.
왜 중요한가?
우리 뇌는 태아 시절부터 아주 정교한 과정을 거쳐 만들어집니다. 그 중에서도 **인터뉴런(interneuron, 뇌 안에서 신호를 조율하는 신경세포)**은 뇌의 아랫부분(배쪽 앞뇌)에서 태어나 윗부분(등쪽 앞뇌, 대뇌피질)으로 이동하는 긴 여정을 거칩니다. 이 이동 과정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뇌 회로가 정상적으로 완성됩니다. 문제는 이 과정이 임신 후반기와 출생 직후에 일어나기 때문에, 살아있는 인간에게서 직접 연구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이었습니다.
자폐 스펙트럼 장애(Autism Spectrum Disorder, ASD)를 비롯한 다양한 신경발달장애(Neurodevelopmental Disorders, NDD)는 바로 이 인터뉴런의 발달 이상과 깊이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. 과학자들은 수백 개의 관련 유전자를 찾아냈지만, 그 유전자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단계에서, 어떤 방식으로 문제를 일으키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였습니다. 이번 연구는 바로 그 미스터리를 풀기 위한 도전입니다.
연구 방법
연구팀은 두 가지 최첨단 기술을 결합했습니다. 첫 번째는 **어셈블로이드(Assembloid)**로, 줄기세포로 만든 미니 뇌 조각(오가노이드) 두 개를 붙여 뇌의 서로 다른 부위가 상호작용하는 환경을 실험실에서 재현한 모델입니다. 두 번째는 CRISPR 스크리닝으로, 유전자 가위(CRISPR) 기술을 이용해 수백 개의 유전자를 한 번에 하나씩 꺼보면서 어떤 유전자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대규모로 탐색하는 방법입니다. 연구팀은 총 425개의 신경발달장애 관련 유전자를 대상으로, 1,000개 이상의 어셈블로이드를 사용해 인터뉴런의 생성과 이동 두 단계를 각각 스크리닝했습니다.
핵심 발견
이번 연구의 가장 놀라운 발견은 인터뉴런이 이동할 때 **소포체(Endoplasmic Reticulum, ER)**가 핵보다 먼저 앞쪽 가지로 이동한다는 사실입니다. 마치 이삿짐을 먼저 새 집에 옮겨놓고 사람이 뒤따라 들어오는 것처럼, 소포체가 길을 먼저 열어주는 역할을 합니다. 신경발달장애 유전자인 LNPK가 이 과정을 조절하며, 이 유전자가 망가지면 소포체 이동이 실패하고 인터뉴런이 제대로 이동하지 못한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.
- 인터뉴런 생성 스크린: 425개 유전자 중
CSDE1,SMAD4를 포함한 13개 후보 유전자가 인터뉴런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. - 인터뉴런 이동 스크린: 1,000개 이상의 어셈블로이드 분석을 통해 세포골격(세포의 뼈대 역할을 하는 구조) 관련 유전자들과
LNPK를 포함한 33개 후보 유전자가 이동 과정에 관여함을 발견했습니다. - 소포체의 새로운 역할: 인터뉴런 이동 시 소포체가 핵 이동보다 먼저 앞쪽 돌기(leading branch)로 자리를 잡는다는 전혀 새로운 세포 메커니즘이 밝혀졌습니다.
- LNPK 유전자 삭제 실험: LNPK를 제거하자 소포체 이동이 비정상적으로 변하고, 결과적으로 인터뉴런의 이동 자체가 실패하는 것이 관찰되었습니다.
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
이번 연구는 자폐증, 지적장애 등 신경발달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왜 그런 증상을 겪는지를 유전자 수준에서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지도를 제공합니다. 앞으로 이 플랫폼을 활용하면 수천 개의 유전자를 체계적으로 분석해 각각의 유전자가 뇌 발달의 어느 단계에서 문제를 일으키는지 파악할 수 있어, 맞춤형 치료제 개발의 실마리가 될 수 있습니다. 특히 실험실에서 인간 뇌 발달 과정을 직접 모방할 수 있다는 점에서, 동물 실험의 한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습니다.
📄 원문: Xiangling Meng, David Yao, Kent Imaizumi et al., "Assembloid CRISPR screens reveal impact of disease genes in human neurodevelopment", Nature, 2023-9-27. DOI: 10.1038/s41586-023-06564-w